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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ihu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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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7 21: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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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을 향한 중보기도 (2012. 11. 9)
설교일 : 2012년 11월 9일(금) 기찬예배
본 문 : 출애굽기 32:1~14
제 목 : 지역을 향한 중보기도

나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끔 뉴스를 통해,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소방관이나
취객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지하철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보고는 대단한 사람,
혹은 영웅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원래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거나, 손해 보는 일을 굉장히 어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먼저 생각하고
먹을 것이 있어도, 입을 것이 있어도, 무언가가 쥐어져도 우선은 자신의 것을 먼저 챙깁니다.
그래서 그런 우리의 모습을 잘 아시는 우리 주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되, 마치 네가 네 자신을 챙기고, 살피는 것처럼 다른 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라고 말씀...

이웃에 대한 사랑은 단순히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모든 믿음의 삶 속에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기도를 해도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서 기도하고,
섬김과 봉사를 해도 나와 관계된 사람만 하고,
사랑을 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우리에게
우리 주님은 친히 누구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고,
누구를 섬기고 봉사해야 하며,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지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보다는 제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몸과 마음이 상한 자들을 위하여 섬기고 봉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조차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저와 여러분의 교회가 속해 있는 지역과 그 곳에 사는 많은 분들은
우리가 좋은 모습으로 다가가도,
오히려 자기들의 유익만 구하고, 더 교회를 이용하려고 할 때도 있고,
더 죄를 짓고, 더 교만하며, 더 하나님을 떠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우리가 복음으로 섬기는 지역과 주민들을 보면
우리는 실망과 좌절의 마음이 들고,
더 이상 그들을 위하여 무언가를 할 힘을 얻지 못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저들을 심판해야 한다고까지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 우리가 꼭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중보기도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기 위해 그를 시내산으로 불러올리셨는데,
그가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자,
홍해를 건너 애굽을 빠져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안해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무언가 행동해야 하고, 어디론가 가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아론에게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요구합니다.

그 때 아론이 그들의 말을 들어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들에게 보이며,
그 금송아지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백성들은 또 좋다고 거기에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거기에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습니다.

시내산에서 모세와 대화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내가 그들을 다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모세가 즉시 여호와 하나님께 구합니다.
그러시면 안된다고, 뜻을 돌이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모세의 간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진멸하고자 하시는 뜻을 돌이키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가 무엇이었습니다.
7절에 보면, 부패했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회복불가능하게 썩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모습이 부패하여 도려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은 또다른 죄는 8절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애굽을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떠납니다.
그리고는 금새 자신들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어 경배합니다.

또 9절에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은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만의 죄죠.
부패하고, 타락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기만을 위하는 사람이
결국 이르게 되는 곳이 교만이라는 종착역입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은 진멸하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모세가 진멸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막아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놓으시고,
이제 와서 그들을 죽이시면,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제발 노여움을 푸시고, 용서하여 주옵소서.

또 조상들과 그들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어, 뜻을 돌이켜 주옵소서.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늘의 별처럼 네 후손을 많게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이제 그 약속을 지키셔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지금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다 진멸하시면, 그 때 하신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러니까 하나님... 제발 진노를 거두시고, 용서해 주옵소서.

그 모세의 중보기도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십니다.
그 백성을 향해 말씀하신 화를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죄를 지은 것은 분명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고, 기도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라, 모세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직 용서를 구하지 않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돌이키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보기도의 놀라운 능력과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기성과 구산과 평해와 후포지역을 섬기시는 존귀하신 목사님들과 사모님들,
그리고 그 지역에서 복음을 위하여 불철주야 수고하시는 성도님들이 함께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함께 한 이유는
우리 교회가 있고, 우리가 섬기고, 복음을 전해야 할 땅을 위하여 중보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교회가 있는 지역, 우리가 사는 지역,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지역과 사람들이 어떤 지역이며, 사람들입니까?

술과 음란과 불법이 만연해 있고,
돈이면 무엇이든지 된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가득차 있습니다.
돈이 가정과 지역과 사회로 건강하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릇된 문화와 잘못된 관습 탓에 엉뚱한 곳으로 돈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지 이미 오래 되었고,
자신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고 찾으면서
하나님이나 복음, 영생과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어디서 비롯된 교만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의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아집과 편견과 그릇된 의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상숭배와 미신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이단들이 건강한 교회와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곳곳이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오늘 말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교회된 우리는 우리가 사는 지역이, 사람들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서는 중보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부패할 대로 부패하여, 스스로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그것이 죄인지, 아닌지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계속 죄 가운데 머물거나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듯이,
지금은 우리가 우리 곁에 있는 이들을 위하여 중보자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과 사람들을 위하여
저와 여러분들을 중보자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들이 돌이켰기 때문에 우리가 중보자로 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기에 우리가 중보자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죄가운데 거하고,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그들은 여전히 자기를 위하여 우상 앞에 절하고, 미신을 쫓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든,
우리는 그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지역 가운데 우리 교회를 세우고,
우리를 그리스도인되게 하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동안 늘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모세는 회막문에 엎드려 하나님께 백성을 대신하여 중보기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사무엘을 비롯한 수많은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중보기도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세상을 위한 중보기도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한 기도를 잊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을, 우리 교회를
하나님과 이 세상, 하나님과 우리가 사는 지역, 하나님과 이 땅의 사람들 사이에서
중보할 자로 세우셔서
그들이 스스로 용서를 구할 수 없을 때, 우리가 대신 용서구하기를 원하시고,
그들이 스스로 기도할 수 없을 때, 우리가 대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누가 우리가 사는 지역과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겠습니까?
서울 사람이, 부산 사람이, 강원도 사람이... 기도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그 누구보다 기성과 구산과 평해와 후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 아닙니까?
사랑한다면, 기도하십시다.

내가 사랑하는 자식만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지역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다.

내가 사랑하는 부모만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지역의 어르신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십니다.

내 남편만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술과 그릇된 문화와 전통에 사로잡혀 사는 남성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다.

내 아내만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지역의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다.

우리 교회만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지역의 학교와 학원과 식당과 가게와 공장과 배와 바다를 위해서도 기도하십시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중보자된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이 땅을 고쳐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지역을 거룩한 땅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요,
예루살렘과 같이 하나님을 높이는 장소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늘 중보자임을 잊지 않고, 오늘도, 내일도
중보자의 자리에 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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