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영상
 설교 내용
 예배 영상
 그 밖의 말씀나눔
> 예배와 말씀 > 설교 내용
관리자 / ihupo
19
2012-08-23 14:27:34
74
3241
  영적인 밤을 보냅시다 (2012. 8. 22)
설교일 : 2012년 8월 22일(수) 수요기도회
본 문 : 사도행전 5 : 17 ~ 32 (신약 194)
제 목 : 영적인 밤을 보냅시다

올 여름에도 참 많은 분들이 이 곳 후포를 찾았습니다.
부모나 자녀들, 가까운 친척들에서부터 먼 친척까지, 잘 아는 사람에서부터 그냥 아는 사람까지
참으로 다양한 분들이 우리의 가정과 이 곳 바닷가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분들의 표정에서도, 지역적으로도 좀 더 활기가 느껴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처럼 늘 함께 사는 사람이 아닌, 가끔 찾아오는 사람, 혹은 갑자기 찾아오는 사람
멀리 있어서 자주 만나지 못하다가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을 우리는 손님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손님이 오면, 늘 함께 지내던 사람보다 더 잘 대접합니다.
먹는 것도 좀 더 맛난 것을 먹고, 특별히 시간을 내어 손님을 안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손님... 하면 조금 힘들고 부담은 되어도 왠지 친근감이 들고, 다정스럽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좋은 의미의 손님이라는 말에 ‘밤’이라는 글자가 붙으면,
그 의미가 좋지 못한 의미가 되고 맙니다.
‘밤손님’...
물론 밤에 찾아오는 손님이라는 뜻도 있지만,
그 뜻보다는 흔히 밤에 와서 물건을 훔쳐가는 도둑을 이야기할 때 사용합니다.

밤손님처럼 원래는 좋은 의미지만, 그 앞에 ‘밤’자가 붙으면서 부정적인 뜻으로 바뀌는 것들이 있습니다.
문화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밤문화...라고 하면 퇴폐와 향락의 상징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낮이라는 말보다는 밤이라는 말이 훨씬 더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 이유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밤에 대해 그릇된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밤을 단지 즐기기 위한 시간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갖 좋지 못한 밤문화들이 나라마다, 도시마다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밤’은 그런 부정적인 밤문화를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밤이나 낮, 어느 하나만을 지으신 것이 아니고, 동시에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둘을 합쳐 하루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가 서로 무관한 날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창1: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루가 낮과 밤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하루가 아침에 시작하여 밤에 끝나는 것처럼 여기고,
실제로 하루의 시간은 밤 12시에 끝나는 것으로 계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 개념은 전혀 다릅니다.
창1:5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하루는 저녁과 밤을 지나 이튿날 아침까지 이어집니다.
즉, 아침에 시작된 하루는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끝납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루가 아침에 시작하여 밤 12시에 끝나고, 다시 다음 날은 아침에 시작하는 단절된 날들의 연속이 아니라,
아침에 시작하여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하루하루가 서로 맞물려 있음을 의미합니다.
오늘 하루가 시작된 하루가 끝나는 시점인 내일 아침은 곧 내일이 시작되는 시간이기에,
내일은 오늘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이 말은 곧 내일은 오늘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과 내일을 이어주는 연결점이 바로 밤입니다.
특히 내일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시간이 바로 밤이요,
오늘 밤을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오늘의 의미 뿐만 아니라,
내일의 의미까지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밤이라는 시간을 함부로 허비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밤을 쾌락과 욕망을 위해 잘못 사용하다가 일생을 망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스스로 선택한 도시는 퇴폐적인 밤문화가 성행했던 소돔이었습니다.
그가 거기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그 삶의 끝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 사사 삼손은 하나님께 드려진 나실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밤이 되면 그의 삶은 무절제해 졌고,
결국 드릴라라는 여인의 덫에 걸려 블레셋군에게 생포되어
두 눈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웅이 그렇게 비참하게 몰락하게 된 원인은 그가 그릇되게 살았던 밤의 결과였습니다.

예수님과의 최후의 만찬에서 가룟 유다가 슬그머니 빠져나가 예수님을 판 시간 또한 밤이었습니다.
은 30에 예수님을 팔았고, 그리고 그 밤에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을 잡는데 앞장섰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밤을 그릇되게 사용하는 사람은
그 삶의 결과가 좋지 못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밤을 바르게 살아낸 사람은 밤의 연장선상인, 다음 날의 낮 역시 바르게 세워갑니다.

오늘 말씀은 베드로와 사도들이 두 번째로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에게 붙잡혀 고초를 겪는 내용입니다.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백성들이 따르자
이들을 시기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유대인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시기가 가득하여 사도들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성경에 감옥은 두 종류가 나오는데,
하나는 권세자의 집에 달린 사설 감옥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공공 감옥입니다. 요즘의 교도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사도들을 가둔 곳은 사설 감옥이 아니고
경비가 삼엄한 국가에서 관리하는 감옥입니다.

그런데 19절에 보면, 그런 감옥에서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라고 되어있습니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경비가 삼엄한 감옥에 갇힌 사도들...
탈출하거나 구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감옥에서
주의 사자가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이끌어 내었다는 말입니다.

몇 명의 사자가, 어떤 방법으로 옥문을 열고, 그들을 구했는지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내용이나 방법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어떤 일도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또중요한 사실은 주의 사자가 사도들을 이끌어 낸 시간입니다.
주의 사자는 이들을 낮이 아닌 밤에 이끌어 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릇된 밤문화에 젖어 있는 바로 그 밤이 사도들에게는 은총의 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똑같은 밤이지만,
그릇된 밤문화에 젖어 밤을 보낸 사람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그 날의 의미 뿐만 아니라,
그 다음날 아침을 시작하는 의미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옥에서 풀려난 사도들은 주의 사자의 명령대로 새벽부터 다시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밤에 주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사도들은
은혜로운 밤의 결과인 이튿날 아침부터 주님을 위한 삶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바르게 믿기 원하는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메시지인지 모릅니다.
참되고, 바른 하루는 그 날 아침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그 전날 밤부터 시작됩니다.
바른 밤의 토대 위에서만 바른 아침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75세에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밤 그를 불러내어 하늘의 별을 보여주시면서,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당시 이미 75세를 넘긴 아브라함에게 자식은 없었지만,
그는 그런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그의 삶을 친히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날, 그 밤의 약속으로 인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과 손자인 야곱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신 것도 모두 밤이었습니다.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것도 밤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사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것도 밤이었고,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개인적인 은혜를 경험한 것도 밤이었습니다.

이런 내용들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역사하시지만,
밤에는 각 개인과 개별적인 관계를 은밀하게 더욱 깊이 맺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개개인의 낮과 인생을 바르게 세워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영적인 낮이 영적인 밤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밤이 영적인 낮 시간을 이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의 삶이나 주변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 다음 날은 어떻습니까?
하루 종일 피곤하고, 찌뿌드한게 몸이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닙니다.
일을 해도 잘 집중이 되지 않고, 하루 종일 멍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전날 밤에 충분히 잠을 자고, 쉰 경우에는 몸도 마음도 편안하여
다음 날 아침 거뜬히 일어나고, 하루 종일 일도 집중해서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직장생활할 때, 옆에 있는 사무실에 근무하는 분을 알고 지냈는데,
이 분은 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퇴근만 하면 술을 그렇게 마십니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가 잠시 자고, 출근을 하니,
잠자는 시간이 부족한데다,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셔서 몸도, 정신도 몽롱한 상태에서 출근합니다.
아침에 가 보면 속을 푼다고 진한 커피를 마시는데, 눈이 풀려 있습니다.
그런 눈과 마음, 정신으로 어떻게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루종일 그렇게 지내다가 정신이 겨우 맑아질만한 하면 퇴근하고,
퇴근하면 또 술집에 가고...
그 사람의 삶의 결과가 어떻겠습니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밤시간이 낮의 모든 시간을 결정하는 것이요, 준비하는 것이라면,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밤문화가 필요합니다.
부정적인 의미의 밤문화가 아니라,
사람의 일생을 영적으로 바르게 세워주는 영적인 밤문화 말입니다.

주님이 베들레헴 외양간에 태어나신 시간도 밤이요,
무덤 속에서 부활하신 것도 밤이었습니다.
인류를 위해 밤에 오시고, 밤에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밤에 당신을 사모하는 사람들과 은밀하게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많은 밤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혹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타락한 밤문화를 즐기며, 살아가지는 않으십니까?
그렇게는 아니라도, 바보상자라 불리우는 TV 앞에서 몇 시간씩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매일 TV드라마와 스포츠 중계에 울고, 웃기를 반복하며, TV를 끄고 잠자리에 드는 순간
공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고, 그 다음날 아침 개운치 못한 컨디션으로 아침을 맞지는 않으십니까?

우리의 몸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수고한 육신을 쉬게 해 주는 것은 너무도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육신을 쉬게 하면서 영적으로 다음날을 준비하는 것과
애라 모르겠다,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내일이지...하며 밤시간들 허비하는 것과는
삶의 의미와 질이 너무나도 달라집니다.

진정으로 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밤을 헛되이 보내지 마십시오.
깊은 밤, 주님의 말씀 안에서 주님과 깊고도 은밀한 교제를 나누십시오.
깊은 밤,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여러분의 천금같이 귀한 시간을 TV에 내어주지 말고, 다시금 되찾으십시오.
주님의 능력 안에서 영육간의 자유함을 누리십시오.
주님주시는 평강으로 진정한 쉼과 안식의 밤을 누리십시오.
우리가 우리의 밤을 그런 시간들로 채운다면,
늦은 밤 잠자리에 드는 우리의 마음은 TV를 보고 난 뒤에 잠자리에 들 때의 허탈감이 아니라,
하나님 주시는 평안과 내일에 대한 기대와 설램으로 한없이 기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밤으로 인해, 이튿날 아침은 새로워질 것입니다.

다윗이 인생의 숱한 어려운 순간에도 모든 일들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밤이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답답한 일이 있을 때, 고민되는 일이 있을 때, 억울한 일이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밤을 새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쁘고,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밤을 지새우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래서 깊은 밤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겨했던 다윗을 하나님은 참 사랑하셨고,
그와 그 자손들의 삶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밤은 하루가 끝나는 시간이 아니라,
이튿날 아침이 시작되는 출발점임을 기억하여
헛되이, 그릇되게 밤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영적인 밤을 보냄으로
하나님께서 많이 사랑하시고, 그 길을 인도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참고/인용 - 사도행전 속으로 (이재철 저, 홍성사))

다 나음을 얻으니라 (2012. 8. 1)
무엇을 반복할 것인가? (2012.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