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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ihu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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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1 21: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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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나음을 얻으니라 (2012. 8. 1)
설교일 : 2012년 8월 1일(수) 수요기도회
본 문 : 사도행전 5 : 12 ~ 16 (신약 194)
제 목 : 다 나음을 얻으니라

예나 지금이나 질병의 문제는 언제나 사람의 관심사였습니다.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걸린 병을 고치기 위해
인류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수고하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예전에는 걸리면 죽었을 질병들에서 해방되고,
많은 질병들이 정복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병들은 그 원인도, 치료법도 모른 채
걸리면 심한 고통을 받거나, 죽음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망하는 것이 바로 건강입니다.

오죽하면 9988234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일 앓다가 3일만에 죽으면(4) 좋겠다는 사람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죽는 것이야 누구에게나 해당되기에 피할 수 없지만,
건강만큼은 지키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셨으면 건강하게 살게 할 것이지
병들게 하고, 질병 가운데 내버려 두시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입니다.
사람이 아프거나 죽게 된 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본래 죽지 않는 존재로 만드셨는데
죽지 않는다는 것은 병들지 않는 존재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죽음을 자초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죄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지 않는 존재로 창조된 사람이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병과 무관하던 사람의 육체가 병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병으로 죽어갑니다.

이 말을 오해하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지금 누군가가 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그가 다른 사람보다 죄가 더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병들거나 죽지 않아야 할 사람이 병들게 된 근본 원인이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의 범죄 때문이라는 말이며, 그 책임 또한 우리 사람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에 교회와 신앙의 양심을 지켰던 본회퍼 목사님이 교수형에 처하기 전에
마리아라는 연인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는 히틀러에 의해 나치군에 강제 징집되어 둘 다 전장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마리아는 본 회퍼 목사님에게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가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이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세상과 인간의 증오와 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세상과 인간이 죽인 사람을 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버지와 오빠의 삶을 마치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분들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과 책임은 우리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저지르고, 만든 문제투성이의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인간이 파괴한 창조질서를 하나님 당신의 능력으로 보존하고 계십니다.

질병의 문제만 해도, 하나님은 사람에게 의학의 진보를 통해서 질병을 극복하게 하시고
때로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해 주시기도 합니다.
그 뿐 아니라, 당신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우리의 죄값을 치르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심과 동시에
잃어버린 낙원이 아닌 그보다 더 좋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프지 않는 존재라면 병원과 의사는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병들지 않는 존재라면, 우리에겐 치유자가 필요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구원자가 필요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육간에 병들고,
결국에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를 영육간에 살려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원자, 치유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의 해결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 치료자, 치유자, 회복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들에 의한 병고침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여러 곳에서 몸과 마음, 정신이 아픈 자들을 사도들 곁에 데리고 왔고,
사도들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다 나음을 입게 됩니다.

‘나음을 얻다’라는 말은 본래 ‘섬기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20:28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이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섬긴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의 섬김의 가장 큰 내용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병고침, 즉 치유와 회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신 동안 끊임없이 몸과 마음이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영육간에 병들어 죽어 가는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해
이 땅 오신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와 목적이
세상과 사람들을 구원하고 치유하며 회복시키시기 위함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신 동안 그 일에 충실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계신 모든 일을 섬김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섬김을 제자들과 그 이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탁하셨고
오늘 사도행전의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섬김의 사역, 곧 치유사역을 계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부어주셨던 성령의 능력을 사도들에게도 주사,
사도들이 치유사역을 통하여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섬김의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초대교회 이후로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귀한 사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치유와 회복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된 우리들이 오늘날에 우리가 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일들입니다.

아픈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능력으로 나음을 입고,
영육간에 괴로움을 받는 사람들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것이
오늘 이 시대에 교회를 세우시고, 그리스도인들을 두신 이유입니다.

교회가 이런 치유와 회복의 은혜와 능력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교회가 이 곳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곁에 있는 이들에게 주님 주시는 능력으로
치유와 회복을 나타내지 못한다면, 말 뿐인 그리스도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것이 사람이든, 민족이든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나,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은
곧 치유와 회복을 의미합니다.

노아에게 하나님의 음성은 죄가 만연한 세상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삶을 회복시키는 생수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상한 마음으로 고향을 떠나가던 야곱에게 벧엘에서 만나주신 하나님은 삶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400년 동안이나 계속된 극심한 노예생활의 고통 속에서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해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출애굽 후 아무 것도 없고, 죽음만 도사리는 광야 40년 동안 함께 하신 하나님은 은혜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아주 적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치유와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아픈 몸이 치유되었고,
삶이 고단하고, 지친 사람들은 평안을 누렸고,
마음이 상한 자는 위로를 받았으며,
영이 혼탁한 사람들은 귀신이 떠나가고, 맑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을 만난 모든 사람이 치유와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특징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있으므로, 우리가 사는 이 땅과 지역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도록 하십시다.
저와 여러분이 있으므로 위로와 살 소망을 얻도록 하십시다.

주변을 둘러 보세요.
힘들게 사는 분들, 어렵게 사는 분들, 소망없이 사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분들에게 우리가 소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고단하고 지친 삶을 살아가는 분들에게 교회가 생수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모세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혼잡한 사사시대 속에서 사무엘은 그 시대의 소망이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 다윗에게 모여 들었겠습니까?
다윗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와 기쁨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를 마치면서 바울은 몇몇 사람들을 칭찬하며, 격려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기로 작정하고, 부족한 것을 채웠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그 말씀에 귀기울였습니까?
예수님에게는, 그 분의 말씀 속에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시원함과 위로와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 가운데 주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할 일은 많습니다.
복음도 전해야 하고, 구제도 해야 하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도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사역의 중심에는 치유와 회복이라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많은 선교사님들도,
구제사역을 하는 사역자들도,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는 긍휼사역을 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육신의 질병과 영적인 질병, 삶의 고단함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리나라 선교역사입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나라 선교초기 선교사들은
먼저 병원을 의술을 통해 병들고, 죽어가던 사람들을 살려냈고, 회복시켰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워 영적으로 병들고, 죽어가던 사람들을 치유시켰습니다.
또한 학교를 통해 무지를 깨우쳐, 삶의 비전을 지니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육간에 치유되고, 회복되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원자와 치유자로 이 땅에 보내셨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고, 치유해 주셨습니다.

날마다 그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며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사도들처럼 우리 교회가, 우리 그리스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시대를 치유하고,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일을 감당하는 사명자가 되십시다.

병든 우리의 영혼을 고쳐주시고, 연약한 우리의 영혼을 강건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십시다.
세상의 의술로 치료할 수 없는 지병을 지닌 분들의 환부에 손을 얹고,
주님께서 다 나음을 얻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십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주님께 맡기십시다.

사도 바울처럼 육체의 질병은 나음을 얻지 못할지라도,
도리어 그로 인해 우리의 영혼을 더욱 강건케 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리십시다.
그럴 때 우리는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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