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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ihu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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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1 20:5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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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은혜를 받아 (2012. 7. 11)

설교일 : 2012711() 수요기도회

본 문 : 사도행전 4 : 32 ~ 37 (신약 193)

제 목 : 큰 은혜를 받아

 

사람은 태어난 이후로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취하는 존재입니다.

보다 더 많이 먹고, 보다 더 많이 갖고, 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수고하며 살아갑니다.

어린 시절 다른 형제들보다 더 먹겠다고, 더 가지겠다고 싸우던 기억이 없으신가요?

둘 사이의 그런 모습이 좀 지나치면 다툼이 되고,

만약 그 모습이 나라와 나라라면 그것이 전쟁의 불씨가 되곤합니다.

 

사람은 먹어야 살고, 입어야 살고, 가진 게 있어야 사는 존재요, 본성이기에

이런 다툼이나 전쟁의 불씨는 어느 시대나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순간순간 그 불씨가 살아나 많은 사람들이 애매하게 죽거나 다쳤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처음 교회는 이런 사람의 본성을 거스르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도다......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남의 것이라도 내 것으로 취하는 것이 사람의 모습이라면,

오늘 말씀의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그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도 똑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첫째는 우리가 지금까지 사도행전을 통하여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의 깊고 큰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가 사람들을 한 마음, 한 뜻되게 했고,

그렇게 한 마음과 한 뜻된 사람들의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는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한 것이었고,

세상의 사람들을 향하여서는 자신의 재물을 나눈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나 믿음 안에서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않고 교회 안에서 어떤 사역을 하게 되면

그것은 사역이 아니라, 그냥 일이 되고 맙니다.

은혜가 없는... 일을 통해서는 은혜가 흘러가지 않습니다.

 

주님의 일이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 능력을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받은 것이 없는데, 어떻게 흘려보낼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예배도 드려야 하고, 기도도 해야 하고, 말씀도 묵상해야 하고,

전도와 선교도 해야 하고, 구제와 사회봉사도 해야 하지만,

그 일들을 경험되어진 은혜없이 하게 되면,

일은 하는 것 같고, 모양은 분명히 무언가가 되는 것 같은데,

그 안에 기쁨과 감격과 열매가 없게 됩니다.

 

왜요?

기쁨과 열매를 맺게 하는 원동력인 은혜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들에는 예수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니라,

사람의 냄새가 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 깊이 경험하십시오.

은혜가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지 마십시오.

내가 아직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고, 지금 은혜가운데 있지 못하다면 그대로 있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먼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능력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까지 엎드리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에 눈물을 흘릴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그리고나서 일어나 주의 일을 감당하십시오.

그래야 기쁨과 감격가운데 열매맺는 주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이

주님께서 명령하셨다고 의무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도 그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기다리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성령이 무엇인데요? 은혜입니다.

 

이들은 그 은혜를 사모했고, 함께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모여 기도할 때, 성령께서 임하셨고,

성령, 곧 은혜를 경험하자, 이들은 뛰쳐나가 주의 일을 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뛰쳐나가 주의 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뜨거운 불을 가슴에 안고 있으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 믿음생활하면서 자꾸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자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려고 해 보세요.

은혜를 경험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깨닫게 되고, 할 일을 보여 주십니다.

일은 그 때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서도 실패하는 이유는

우리가 은혜보다는 너무 일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고, 누리는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시간보다 내가 은혜를 사모하고, 경험하는 시간이 더 많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생활 하면서 예배만 드리고, 혹은 기도만 하고, 다른 봉사를 하지 않으면

무언가 믿음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또 다른 사람들을 평가할 때도 그런 잣대를 가지고 판단합니다.

 

그러다보니 교회 안의 다른 일과 봉사 때문에

오히려 예배와 기도, 말씀생활에 집중하지 못하고, 소홀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그런 믿음생활이 반복되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께서 그렇게 싫어하셨던 외식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변해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십니까?

예배 중에, 기도 중에, 말씀 중에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계십니까?

우선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은혜를 구하고, 은혜를 회복하고, 은혜를 나누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들도 똑같은 사람인데, 모든 재물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바칠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은혜받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지난 16세기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킬 당시 독일은 영적으로 가장 빛났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20세기 히틀러 치하의 독일은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독일교회는 전통적으로 목회자가 정부로부터 봉급을 받는 국가 교회입니다.

모든 목회자가 나라의 녹을 받는 공무원이다 보니

목회자들이나 교회가 그 당시 절대 권력을 가졌던 히틀러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독일교회는 예수님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히틀러를 위한 교회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몇몇 바른 신앙 양심을 가진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나치에 의해 장악되는 교회에 반대하여 고백교회를 세웁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본 회퍼 목사님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히틀러가 통치하던 내내 교회가 나아갈 방향과 히틀러 통치의 부당함을

말씀 중심으로 선포하다가 체포되어, 2차 대전이 끝나기 3주 전에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그 때 나이 39세였습니다.

39세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그가 남긴 많은 설교와 글들은 전쟁 후에 독일교회가 재건되는데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일관된 신앙정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오늘에 비하면 초라하기 이를데 없는 초대 교회가

어떻게 오늘날 우리가 가장 바라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델이 될 수 있겠습니까?

두 주인을 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주인으로 모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의 재물이란 돈, 권력, 명예를 포함하여 사람이 탐하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초대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결단했던 것은

바로 사람이 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만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은 재물이 있어야 할 위치가 사람의 발 아래임을 새롭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삶은 복잡한 것 같아도 알고 보면, 3가지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둘째는 사람과의 관계이며,

셋째는 물질과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 세 관계의 위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과 질, 그리고 결과가 달라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의 위치를 머리 위에 두고 살아갑니다.

물질로 대표되는 세상의 돈이나 권력, 명예를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섬기며 삽니다.

 

물질이 사람의 머리 위에 자리잡으면

그 물질의 지배 아래 사는 사람은 비인격적인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인격이라는 것이 없는 물질을 머리 위에 두었으니,

그 아래에 있는 사람이 비인격적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인격체이신 하나님과 사람을 자기 발치에 두고,

하나님과 사람을 이용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참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머리 위에 모시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머리 위에 두었으니, 하나님의 인격에 의해 지배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격을 힘입어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을 자신과 대등한 관계에서 인격적으로 대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머리로 삼았기 때문에 사람은 경배의 대상도 아니고, 욕심을 채우는 도구도 아닌

그냥 함께 교제하며 살아야 할 형제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머리로 모신 그리스도인에게 물질은 비로소 인간의 발 앞,

곧 바른 자기 자리를 찾게 되고,

그런 사람들에게 물질은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머리 위에 모시고 물질을 발 아래에 둘 때,

비인격적인 물질 또한 인격을 지니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격이 사람을 통해 발 아래에 있는 물질에까지 흘러내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의 모양과 액수가 아무리 같다고 해서 같은 돈이 아닙니다.

누가 그 돈을 가졌는가에 따라 돈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머리로 삼은 사람에게 주어진 돈이냐,

물질을 머리에 둔 사람에게 주어진 돈이냐에 따라,

그 돈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같은 돈이지만, 그 돈의 가치는 너무도 큰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 나오는 초대 교회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하나님만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모두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물질에 매임이 없이,

물질을 발 앞에 두고, 오히려 그 위에 서서 물질의 주인이 될 수 있었고

그들이 지닌 물질은 그 당시 가난하고,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을 살리는 사랑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의 세상을 한번 바라보십시오.

TV를 틀어 뉴스를 보거나, 프로그램들을 보십시오.

세상과 거기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재물을 머리에 두고,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는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물질을 머리 위에 이고 살다보니,

그 영향으로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같지 못한 모습으로 사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초대 교회가 있던 그 당시 사회도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재물을 머리에서 내려, 발 앞에 두기 시작하면서부터,

재물과 하나님, 두 주인이 아닌,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을 주인으로 모시기 시작하면서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희망은 교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정치나 경제나 문화가 이 시대 희망의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직 교회만이나, 그리스도인들만이 이 시대의 대안이요,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치를 바르게 설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우리 머리 위에 모십시다.

물질을 우리의 발 아래에 두고, 그 위에 물질의 주인으로 서십시다.

그리고 우리 발 아래의 물질 위로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믿음과 인격이 흘러내리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 물질이 우리 앞에 있는 사람,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을 살리는 사랑과 생명의 물질이 되게 하십시다.

 

성도 여러분!

돈이 필요한 시대에 살다보니, 돈에 울기도 하고, 돈에 웃기도 합니다.

통장에 돈이 많이 있으면 안심되고, 그렇지 않으면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좀 더 젊을 때 많은 재물을 모으려고 수고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수고하고 애쓰는 여러분들을 격려하고, 수고에 합당한 열매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꼭 기억하십시다.

재물, 물질의 자리는 내 머리 위가 아니라, 언제나 나의 발 아래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다.

재물이, 물질이 자꾸 발 아래에서 머리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경험하므로, 재물을 발 아래에 두십시다.

 

내 머리 위의 자리는 항상 하나님께 두고,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날마다 고백하며 살아가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교회 하나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사는 지역은 변화될 것이며,

 

나 한 사람쯤이야...가 아니라,

나 한 사람이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가정과 우리가 사는 후포땅은 변화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우리 교회는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희망이자, 이 지역의 소망입니다.

 

말씀을 정리하면서 2가지를 기억하십시다.

 

한 가지는 어떤 일에 앞서 하나님 은혜가 우선임을 기억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믿음의 위치... 곧 하나님, 사람, 재물의 위치를 바르게 설정하는 것입니다.

 

2가지를 기억하므로 이 시대, 이 땅에서

하나님과 세상의 희망이 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에 부족함 없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 마음으로 기도하다 (2012. 7. 4)
위로의 아들 바나바 (2012.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