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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ihu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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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5 10: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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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을 이기는 비결⑤ - 성령의 감화 (21. 7. 14 수요기도회)
◉ 설교일 : 2021714() 수요기도회

◉ 
본 문 : 고린도후서 6:6, 사도행전 13:4~12 (신약 291)

◉ 
제 목 : 고난을 이기는 비결- 성령의 감화

 

난주에 우리는 바울이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네 번째 이유인,

자비함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고난을 이겨내는 첫 번째 비결은 깨끗함이었고, 두 번째가 지식,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었으며,

세 번째가 오래 참음, 네 번째가 자비함이었습니다.

 

자비라는 말은 크게 사랑하고, 가엾게 여긴다는 의미와 친절, 호의라는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에서 사도였던 바울이 여러 가지 고난 가운데서도 견딜 수 있었던 자비의 의미는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울이 자비함, 곧 믿음 안에서 친절과 호의를 지녔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고난들을 잘 감당했다는 것입니.

 

친절이란 친절한 마음씨를 말하고, 친절한 말과 친절한 행동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친절하다는 건, 구지 그럴 필요가 없는데, 그렇게까지 해 주는 걸 말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친절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모습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겠죠.

나에게 자비함, 곧 친절과 호의가 있는가...

나는 해야 할 것만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구지 할 필요가 없는데, 더 하는 친절한 사람인가.

의무와 책임, 그 이상도 이하도 하지 않고 딱 거기까지만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늘 의무와 책임, 그 이상의 것들까지 감당하는 사람인가?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친절하게 다가오시고, 함께 해 주시는 분이며,

우리는 그 하나님의 친절하심에 매일 감동하고, 감격하여 사는 존재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새벽마다 기도하고, 아침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런 친절하신 하나님, 도에 넘치는 과분한 사랑을 내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심을

다시한번 깨닫고, 하나님의 친절하심을 따라

무엇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나도 하루를 친절함으로 보내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친절하심을 자주 잊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그 하나님의 친절하심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비하심, 친절하심에 바르게 반응하여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친절하심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삶을 살아가며,

또한 우리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친절을 나누며 살아가자고 했습니다.

 

오늘은 바울이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다섯 번째 이유인,

성령의 감화에 대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요즘 자주 뉴스에 오르내리는 소식이 반도체에 관한 뉴스입니다.

특히 전세계적인 반도체의 공급 부족으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동차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뉴스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의 모든 기능은 운전자에 의하여 조작되었습니다.

차내 온도를 높이고, 낮추고, 창문을 열고, 닫고, 기어를 넣고, 타이어의 공기압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래서 자동차는 견고하고 멋있게 만들면 되었고, 기름만 넣으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자동차들은 마치 자동차 안에 컴퓨터가 들어 있는 것처럼,

시동 거는 것에서부터 자동차의 많은 기능들을 자동차가 알아서 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의 자동차는 기름을 넣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었지만,

요즘은 아무리 비싸고, 좋은 차에 연료가 가득 들어 있어도, 반도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한 바퀴도 굴러갈 수 없습니다.

 

이건 자동차 뿐만이 아닙니다.

요즘 가전제품을 사면, 모두 이 반도체가 들어 있어서

이 반도체를 통해 설정된 프로그램이 가전제품의 성능을 좌우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물품들을 움직입니다.

그런데도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로 여기는 경향도 여전히 많습니다.

 

오늘날 세상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있다면, 그건 돈일텐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통장이나 지갑에 돈이 쌓여 그것들이 눈에 보이면 좋아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돈만을 중요시하다가는 큰 어려움을 당하고 맙니다.

돈의 정체와 가치, 돈의 흐름,

그것이 어떻게 내 손에 들어오고, 언제, 어떻게 내 손에서 나가는가 하는 것처럼

돈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사실은 더 중요합니다.

이건 내가 돈을 따라가느냐, 아니면 내가 돈을 관리하며 활용하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어쩌면 돈을 돈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일 겁니다.

 

앞선 말씀들에서 사도 바울이 많은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견딜 수 있었던 이유가

깨끗함, 하나님을 아는 지식, 오래 참음, 친절과 같은 자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것들은 우리 모두 지니고 싶어 하는 성품이요, 하고 싶어 하는 믿음의 모습들입니다.

그래서 노력도 하고, 최선도 다해 봅니다.

특히 오래 참음이나 끝까지 친절한 마음을 잃지 않는 자비함은 언제나 우리가 애쓰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뭔가요? 그것이 내 마음대로 잘 안 된다는 겁니다.

오래 참고 싶다고 오래 참아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는 한번 오래 참기로 결단하면, 어떤 경우에도 오래 참을 수 있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중 얼마나 될까요?

오랜 동안 잘 참다가도 한번 욱하면, 그만 참지 못합니다.

 

친절과 호의와 같은 자비함도 마찬가지죠.

말씀을 듣고 결심합니다.

앞으로는 좀 더 친절한 마음씨를 가지고,

친절한 말과 친절한 행동으로 곁에 있는 사람들을 믿음으로 섬겨야지 하다가도

나의 친절을 무시하거나 우습게 보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베풀었던 친절을 거두어들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는

나의 결심이나 결단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는 태생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욱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결심과 결단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할 내적인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마치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것이 프로그램인 것처럼,

우리를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프로그램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오늘 말씀의 성령의 감화란, 성령의 감동, 혹은 성령의 도우심 등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온갖 고난과 핍박 가운데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서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내적 생명력을 넣어준 것은 성령의 힘이었습니다.

바울 자신이 지닌 인간적인 탁월함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환난과 역경을

성령을 통해서 넉넉하게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바나바와 바울이 구브로에서 전도할 때, 한 마술사가 바울의 전도를 방해합니다.

그러자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에게 명령하니 그가 앞을 보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이때만이 아닙니다.

바울은 옥에 갇히든,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든, 무엇을 하든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 열심으로 사도로서의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성령의 힘과 도우심이 생명력이 되어, 그 힘으로 모든 일을 감당했습니다.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과 성령께서 주시는 힘에 의해서 했기에

해도 교만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어려움을 겪어도 낙심하지 않으며, 핍박과 고난도 잘 견디어 냈던 것이죠.

 

우리가 주의 일이나 믿음의 일, 교회의 일들을 감당하면서

시험에 들거나, 기분이 안 좋거나, 낙심되거나, 상처를 받는 이유는

정직하게 돌아보면, 내가 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마음을 다하여,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마음이 상합니다.

또한 내 자존감이 낮으면, 믿음의 일을 감당하면서도 자꾸 위축됩니다.

내가 힘이 빠지고, 어려움에 빠지면, 믿음의 일도 그만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우리 안의 내적인 생명력이며, 그 생명력은 곧 성령님의 도우심입니다.

 

성령의 감화는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얻어진 성령의 감화는

내 안에 선한 능력이 되어 모든 신령한 일들은 기쁨과 자원함으로 감당하게 합니다.

믿음으로 살면서 자주 절망하고, 낙심하거나 죄 가운데 살 때, 우리는 자꾸 나의 믿음 없음을 탓합니다.

물론 우리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당연히 우리의 믿음 없음이 낙심의 원인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성령께서 주시는 힘, 곧 그 생명력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곱과 그 아들 요셉을 보세요.

이 두 사람을 비교해 보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야곱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십니까? 혼자서 애쓰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장자의 명분을 얻기 위해서도 혼자 애쓰고, 결혼을 위해서도 혼자 애쓰고,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도 혼자 애쓰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도 혼자 계획하고,

흉년이 들어 애굽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가는 문제에 있어서도 혼자서 고집을 부립니다.

그래서 그의 삶은 있는데, 없어 보이고, 풍성한 것 같은데, 불안해 보입니다.

 

반면 그 아들 요셉을 보세요.

형들의 속임으로 애굽으로 팔려간 이후, 요셉이 혼자서 애쓰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가 늘 하나님과 동행했고, 하나님도 그와 함께 하심으로

그는 어디에 가든지, 자기 앞에 놓인 일들에 충실했을 뿐이고,

그 때 그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지혜로 처신하고, 대처했을 뿐입니다.

그에게는 재산도, 가족도 없었고, 신분도 비천했지만, 그의 삶은 평안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인 생명력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생명력은 바로 하나님과의 동행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12제자들의 모습은 사도행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성령받기 전과 후로 구분됩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예수님과 함께 했고,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기적도 경험하며,

심지어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같은 놀라운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자기 생각들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열심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되었죠?

자기 힘이 아닌,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사도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자 그들은 두려울 것 없는 담대한 사도들이 되어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따라 죽음을 불사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됩니다.

여러분! 이런 일들을 시킨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안에 성령을 통한 내적인 생명력이 있을 때,

그 생명력이 터져 나와 힘과 능력이 될 때, 감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화와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도 믿음으로 살 수 있고, 주의 일을 할 수 있으며,

내 삶에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마십시오.

교회에 나오는 일, 예배를 드리는 일, 기도하는 일,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일, 말씀대로 사는 일,

봉사하고, 섬기는 일, 삶의 자리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일,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

이 모든 일에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이 필요를 알아야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습니다.

구해야 성령을 받을 수 있고,

성령을 받아야 성령의 감화로 어떤 어려움도 감당하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제자들의 삶, 사도였던 바울의 삶, 초대 교회 성도들의 삶,

그리고 지금까지 믿음으로 살아왔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성령을 받기 전과 후로 나뉘어졌고, 성령을 받은 후 그 모든 이들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교회 나오기 전과 후, 예수님을 믿기 전과 후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기 전과 후로 나뉘어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함께 모여 뜨겁게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았던 제자들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오랜 시간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을 풍성히 받았던 바울처럼

오늘 우리도 지금의 모습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위하여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가운데 기도하고, 구하십시다.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의 내적인 생명력을 위하여 성령을 구하는데, 왜 안 주시겠습니까?

우리, 성령을 구함으로 성령이 내 속의 생명력이 되어

내 열심이 아닌, 성령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살아가십시다.

내 열심은 지치지만, 하나님의 열심은 지치지 않습니다.

내 열심은 낙심과 절망을 반복하지만, 하나님의 열심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내 열심은 고난이라는 산을 넘어갈 수 없고 그 힘도 없어서 주저앉지만,

성령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열심은 아무리 높은 고난의 산이라 할지라도 기쁨으로 넉넉히 넘어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남은 삶... 언제나 하나님께 성령을 구함으로 성령을 받아

성령의 감화라는 내적인 생명력을 지니고 모든 일들을 감당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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