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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ihu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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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2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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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21. 7. 11 주일예배)
설교일 : 2021711()

본 문 : 마가복음 12:28~31 (신약 76)

제 목 :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믿음을 가진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삶의 표준인 성경을 따라 산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따르고 순종해야 할 성경 속 말씀은 성경의 두께만큼이나 많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공부는 해야겠는데, 공부할 분량이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면,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처럼,

믿음으로 사는 우리 역시, 지켜야 할 말씀이 너무 많으면, 마음만 앞서고

실제로 어느 것 하나 지키지 못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꺼운 성경책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말씀을 찾아 정리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지켜야 할 내용들이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정리되어야 지키는 우리도 쉽게 지킬 수 있습니다.

내가 성경학자도 아니고, 그 많은 성경말씀 속에서 어떻게 그 내용들을 찾고, 정리할 수 있을까?...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께서 정리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십계명을 실제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조목조목 쪼개어 놓았습니다.

그게 신약성경에 율법이라고 표현된 것인데,

그렇게 만들어져 지켜야 할 말씀들은 무려 613가지나 되었습니다.

10개의 계명이 613개로 늘어난 것이죠.

말이 613가지지,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그것들이 있는지 기억하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그 많은 율법들을 따로 공부하여 가르치기도 하고,

때가 되면, 그 율법들을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도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반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킬 엄두를 아예 낼 수 없었습니다.

 

십계명을 실제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그렇게 잘게 쪼개놓은 것 가지고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10개 밖에 되지 않던 계명이 600개가 넘어가다보니, 그걸 지키느라 정신이 없어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의 일을 할 때와 10개의 일을 할 때가 다르지 않습니까?

하나의 일을 할 때는 그 일에 집중할 수 있고, 그 일의 중요성과 의미들을 알고 일하지만,

동시에 10개의 일을 하려고 해 보세요.

10개의 일들을 쳐내느라 각각의 일들이 지닌 의미들과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그 때부터는 각각의 일들에 담긴 의미를 따라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위한 일을 하게 되고 맙니다.

 

이것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이 외식, 곧 형식적으로 율법을 지키게 된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외식을 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들도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 보고자

600가지가 넘는 수많은 율법을 부지런히 지킨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율법을 지키는 일이 너무 버겁고, 율법을 위한 율법이 되어

나중에는 율법을 지키기는 지키는데, 왜 지키는지조차도 잊어버리고, 지키는데만 열중합니다.

 

이유와 의미를 모르고 지키다보니, 자기는 지키는데, 지키지 않는 사람을 향하여 불편한 마음이 생기고,

그 불편한 마음은 곧 다른 사람을 향한 판단과 정죄로 이어져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그들의 심령은 돌처럼 더욱 단단한 심령이 되어간 것입니다.

 

젊은 남녀가 사랑해서 결혼을 합니다.

결혼하는 시점에서 두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제대로 된 결혼이라면 오직 사랑 하나 보고 상대방을 선택하고,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나면 실제 삶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이전에 나 혼자 살 때는 무엇이든지 내 마음대로 했지만, 결혼한 이후에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늘 상대방을 배려해야 하고, 일이 단순히 두 배가 된 것이 아니라, 세 배, 네 배로 늘어납니다.

 

그런 일들을 분주하게 처리하다보니, 처음의 사랑이 식어지고, 그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쁩니다.

나는 바쁘게 몇 배의 일들을 감당하는데, 상대방인 남편이나 아내는 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면 속이 상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다가 어느 순간 안 좋은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사이가 나빠지고, 멀어지고, 불신과 정죄가 깊어집니다.

그럴 땐 부부나 가정의 일들을 좀 내려놓고,

부부 관계의 의미, 남녀의 의미, 가정의 의미들을 살피며 결혼할 때의 마음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일을 좀 정리하여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부부 사이 회복의 지름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식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이들을 향해,

그리고 그들이 그런 식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바르지 못하다는 판단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책망도 하셨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친절하게 그 의미와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우쳐 주시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기도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도 하시는 모습을 본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이 잘 대답하심을 보고 한 가지 질문을 합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그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첫째는 이것이니, 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유일한 주 너의 하나님의 사랑하라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정리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죠.

서기관은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 율법을 잘 알고, 지키려고 하는 사람인데,

이 사람의 질문은 613가지나 되는 율법 중에서 제일 중요한 율법이 무엇인지를 물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그 613가지나 되는 율법을 요약하면 이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613가지의 율법을 내용별로 추리면, 10계명이 되고, 10계명을 또 추리면, 2개가 된다는 겁니다.

2개가 613가지 율법의 근본적인 정신이요, 의미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아무리 두터워도 결국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말씀으로 모아진다는 것이죠.

 

이 말씀을 다르게 표현하면,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의 삶이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과 사람을 사랑하는 삶으로 채워진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하는 예배, 기도, 찬양, 신앙고백,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것, 말씀에 순종하는 것,

시간을 드리고, 헌금을 드리며, 사명을 따라 사는 것들이

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전도, 선교, 나라사랑, 친교, 교제, 봉사, 섬김, 구제와 같은 것들을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사랑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을 토대로 하여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것을 믿음의 삶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삶의 현장에서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들이

바로 교회생활, 가정생활, 직장생활, 사회생활, 청지기생활,

교육과 훈련, 성장과 성숙, 변화와 개혁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과 사람을 더욱 깊이 사랑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삶, 성도의 삶이란 세 가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사람을 사랑하는 삶, 이 둘을 중심으로 하는 믿음의 삶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

우리가 평생 동안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하는 것 같아도 결국 이 세 가지 중 하나입니다.

유대인들이 10계명을 삶 속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10계명을 613가지로 잘게 쪼겠듯이

사실 오늘 우리도 수많은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의 진리를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하여

말씀 속에서 수많은 적용거리들과 실천거리들을 찾는 일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적용하지 않거나 실천할 수 없는 말씀이라면,

말씀과 내 삶은 어떤 관계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과 복음을 주신 이유는 그렇게 살라고 주신 것이기에

당연히 우리는 그 모든 말씀을 지키고 순종해야 하며,

그렇게 지키고 순종할 때는, 그 말씀을 주신 의도와 정신을 기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 의도와 정신이 뭐라구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어떤 실천이나 적용, 순종도 이 두 가지와 상관없다면,

그런 실천, 적용, 순종은 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순종이든 이 두 가지 의미와 정신이 담기도록 해야 하며,

이 둘이 기초가 되는 믿음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것이 이처럼 늘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삶인가? 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하며,

내가 삶 속에서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써야만 하는, 곧 의무만 있는 것인가? 라는 것이죠.

성도로 살아가는 것이 맨날 이것은 지켜야 하고, 저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만 있냐는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 못가서 지치고 말 것입니다.

 

람은 의무만 감당하다 보면, 반드시 지치게 되어 있고, 지금 내가 뭐하고 있나?하는 회의를 갖게 됩니.

위에서 그리스도인의 삶, 성도의 삶이란 세 가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사람을 사랑하는 삶,

이 둘을 중심으로 하는 믿음의 삶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했는데,

사실 이 세 가지는 의무와도 같은 것들 아닙니까?

내가 하나님에게, 다른 사람에게, 나 자신에게, 교회에, 가정에, 직장에 해야만 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이것들만 하는 믿음생활을 하면 우리는 쉽게 지치고 맙니다.

내가 이러려고 믿음생활하나? 하는 믿음생활에 회의를 갖게 됩니다.

믿음생활의 기쁨이나 즐거움보다는 의무와 무게감에 점점 힘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삶 속에서 믿음으로 살기 이전에

이 세 가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또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의무적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두 번째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의무를 감당하는 첫 번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일들에 대한 감사와 응답입니다.

 

가 이 세 가지 일들과 의무들을 감당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은혜 베풀어 주시,

인도해 주시며, 내게 말씀하시고, 능력 주시며, 위로와 소망, 약속, , 구원을 허락해 주셨기 때문에,

그것이 너무 감사하여 그것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는 하나님도 사랑하고, 다른 사람도 사랑하며, 삶 속에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이 둘이 바뀌었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도 사랑하고, 다른 사람도 사랑하고, 믿음의 삶을 살아갈테니,

나님도 나를 사랑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내 삶을 인도해 주시옵소서...라고 여긴다는 것입니.

 

우리가 그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은 분명히 함께 하시고, 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의무들을 다 해야만 함께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어떠한 의무도 행하지 않았을 때,

아직 하나님도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사랑할 마음이 없으며, 믿음으로 살지 않을 때부터도

이미 우리 삶을 인도해 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나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가운데 있는데,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있고, 구원받은 자녀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만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걸 기억할 때, 우리 안에 감사의 마음이 생기고,

그러면 그 감사를 하나님 앞에 어떻게 표현하면 될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먼저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생활을 시작했다고 착각하지 마십 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이미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구원 계획을 지니고 계시다가 하나님의 때에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이처럼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받고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믿음의 의무를 감당하기 이전에 이것이 우선이고, 먼저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의무를 감당하기 이전에, 또한 의무를 감당하려고만 애쓰지 말고,

그런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하심, 인도하심을 먼저 누리면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무감에 짓눌려, 늘 믿음의 일만 하고 살면서,

그 일 때문에 얼굴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면서

자신의 심령이 돌처럼 굳어가는 것조차 모르는 삶을 살기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은혜와 함께하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늘 한숨짓는 우리가 아니라, 기쁘고,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기쁘고, 행복을 누리다 보면,

... 이제 나도 하나님의 기쁨과 행복이 되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고,

그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삶 속에 믿음의 것들을 적용하는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일에는 웃음이 있고,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다면서요?

많이 사랑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다른 사람을 많이 사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사랑을 많이 받다보면 이기적인 사람이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많은 사랑을 받아 풍성한 삶을 살다보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만한 풍성한 마음이 생기더라는 것이죠.

어렸을 때부터 효도를 강조하는 가문에서 태어나 늘 의무적으로 부모와 어른들에 대한

효도를 행했던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의무적으로 효도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늘 부모의 진심어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시간이 지나 부모가 연약해졌을 때, 진심어린 효도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과 은혜와 인도를 날마다 풍성하게 듬뿍 받아야 의무적인 행함이 아닌,

하나님을 풍성하게 사랑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으며,

믿음의 삶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먼저,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시는 일들을

기억하고, 경험하며,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올 해 후반기 주일예배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모습 네 가지인,

하나님이 내게 행하시는 일, 하나님 사랑하기, 다른 사람 사랑하기, 믿음으로 살기라는

큰 틀을 중심으로 매주 각각에 해당되는 주제 한 가지씩에 대한 말씀을 나눌 예정입니다.

이런 말씀들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좀 더 균형잡힌 믿음생활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게 행하시는 일, 하나님 사랑하기, 다른 사람 사랑하기, 믿음으로 살기라는

네 가지 큰 기둥을 잘 세워, 남은 삶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아름다운 믿음의 집을 지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난을 이기는 비결④ - 자비함 (21. 7. 7 수요기도회)
고난을 이기는 비결⑤ - 성령의 감화 (21. 7. 14 수요기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