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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ihu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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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8 09: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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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을 이기는 비결④ - 자비함 (21. 7. 7 수요기도회)
◉ 설교일 : 202177() 수요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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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고린도후서 6:6, 마태복음 12:7 (신약 291)

◉ 
제 목 : 고난을 이기는 비결- 자비함

 

난주에 우리는 바울이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세 번째 이유인,

오래 참음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고난을 이겨내는 첫 번째 비결은 깨끗함이었고, 두 번째가 지식,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었으며,

세 번째가 오래 참음이었습니다.

오래 참음이란 하나님께서 자격을 부여하신 사도로서 직분을 수행할 때 겪게 되는

적대자들의 반대와 조롱을 감내하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울이 전하는 복음과 사역을 비난하고 놀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바울의 오래 참음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건, 늘 오래 참으면서 산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믿음생활은 한번 하고 마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인생을 걸어야 하고,

전 인생 가운데 달려가는 마라톤과 같기에 빨리 가는 것보다 끝까지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경기보다 오래 참음이 요구되는 것이 마라톤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생활에서 오래 참음이 요구되는 관계나 일들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람과의 관계나 일에서의 오래 참음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생활이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힘든 일들이 많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나 주의 일을 함에 있어서 오래 참는 일에 마음을 두자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래, 끝까지 참는다는 마음을 지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어떤 시련이나 어려움, 고난도 능히 이겨낼 만한 능력을 지니게 된다고 했습니다.

 

믿음생활에서 오래 참음이 요구되는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나 순종에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나 기도할 때, 말씀에 순종할 때도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오래 참음입니다.

그리고 이때의 오래 참음을 우리는 믿음 안에서의 기다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오래 참고, 신실하게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열매와 결과들을 보여 주시면 좋으련만,

여전히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 마음은 낙심이 됩니다.

최선을 다하여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잘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 잘 산다는 것이 세상이 말하는 기준일 때, 우리는 낙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잘 사는 기준을 세상에 두지 말고, 잘 사는 기준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기억하자고 했습니다.

 

오래 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는 사람은

무슨 일을 당해도 기쁨으로 오래 참는 믿음을 이어갈 수 있고,

그런 믿음이 또다시 우리 삶을 평안으로 이끄는 선순환의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든, 주의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모습에서든, 오래 참는 것들을 훈련하자고 했습니다.

 

오늘은 바울이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네 번째 이유인,

자비함에 대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자비라는 말이 물론 성경에도 여러 차례 나오고, 하나님을 자비로우신 하나님이라고 부르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불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자비란 크게 사랑하고, 가엾게 여긴다는 기본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지만,

교에서 말하는 자비란 중생들에게 즐거움과 복을 주고, 고통과 괴로움을 없게 함이란 의미로 사용합니.

 

의미는 다르지만, 불교에서도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실 믿음을 가진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 중의 하나가 자비라는 단어입니다.

저 역시도 지금까지 설교나 성경공부를 하면서 자비라는 제목을 붙여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사랑이나 긍휼 같이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말들을 사용했었죠.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자비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우리에게도 자비를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자비도 그 의미가 조금씩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그 의미들이 구분되지만, 우리말로는 같은 자비로 표현됩니다.

리가 알고 있는 크게 사랑하고, 가엾게 여긴다는 자비라는 말의 원래 의미는 mercy라고 표현하고 있,

오늘 말씀의 자비는 ‘kindness’라고 해서 우리말로 해석하면, 친절, 호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비하시다라고 할 때는,

mercy , 우리가 원래 알고 있는 의미인 크게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신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이 주로 말씀하는 자비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지만, 오늘 말씀에서 바울이 고난을 이겨내는 비결로 말씀하고 있는 자비는 친절, 호의라는 의미입니.

이런 의미로 사용된 말씀들을 몇 군데 살펴보면,

아브라함이 늙은 종을 보내어 아들 이삭의 아내감을 구하고자 할 때, 늙은 종이 나홀의 성에 이릅니다.

그리고 성 밖 우물 곁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사,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데,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이 말씀 가운데 나오는 은혜라는 말이 오늘 말씀의 자비와 같은 친절, 호의란 뜻입니다.

늙은 종인 자신이 주인 아들의 신붓감을 구하는데, 하나님께서 호의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죠.

 

또 창세기 40장에 보면, 요셉이 같은 감옥에 갇혀있는

애굽왕 바로의 술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 주고, 이런 부탁을 합니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이 말씀에 나오는 은혜도 역시 호의, 친절이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친절을 베풀었으니, 당신도 내게 친절을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에 보낸 정탐꾼을 숨겨준 라합이 그들을 보내면서

내가 당신들을 선대하였으니, 당신들도 나와 내 집을 선대하도록 맹세하라고 하니다.

자기가 친절을 베풀어 그들을 숨겨주어 살려준 것처럼,

훗날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나와 내 가족을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죠.

 

이처럼 같은 자비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상황과 내용에 따라

때로는 단순히 불쌍히 여겨 사랑하기도 하고, 때로는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의 자비는 후자입니다.

바울이 자비함을 지녔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고난들을 잘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자비함, 곧 친절은 앞선 오래 참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친절을 유지하려면 오래 참아야 하기 때문이죠.

 

누군가가 나를 계속 미워하고, 비난하고, 내게 욕을 하는데,

그런 사람에게 계속해서 친절과 호의를 베풀려면, 오래 참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면서 우리가 보여야 할 모습이 오래 참음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왜, 무엇을 위하여 오래 참아야 하나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비, 곧 친절과 호의를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기 위함입니다.

 

사람들과 화해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 자비하심 속에 살아갈 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 곧 자비함이 생겨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오래 참고,

자비한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비결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친절해야 합니다.

 

친절이란 단순히 좋은 표정으로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라고 말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친절한 마음씨를 말하고, 친절한 말과 친절한 행동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친절한 사람에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따뜻함입니다.

무뚝뚝한 사람을 만나면 우리도 무뚝뚝해지고, 괜히 마음 문이 닫힙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진심으로 친절하게 대하면, 우리 마음도 편안하고, 환해집니다.

 

그러면 친절하다는 건 무엇일까요? 단순히 말과 표현일까요?

친절하다는 건, 구지 그럴 필요가 없는데, 그렇게까지 해 주는 걸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디를 찾아가야 하는데 잘 모릅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어떻게 가라고 가르쳐만 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직접 나를 데리고 찾는 곳까지 가 줍니다.

가르쳐만 주어도 되는데, 내가 찾는 곳까지 직접 데려다 주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한 첫 번째 인상이 친절하다는 인상일 겁니다.

 

예수님이 참 친절한 분이셨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예수님은 구지 그럴 필요가 없는 데 행하신 일들이 많습니다.

병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을 찾아온 병자들을

구지 일일이 만나 아픈 곳에 손을 얹어 기도해 주시지 않아도 되는데, 늘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에게 그냥 물을 달라 하여 마른 목만 축이셔도 되는데,

구지 그 여인의 영적인 목마름까지 간섭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원자로서의 일만 감당하셔도 되는데,

구지 십자가를 지고 인간처럼 죽으셨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보면 예수님은 인간인 우리를 향해 굉장한 친절을 베푸신 분입니다.

 

성령님도 참 친절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구지 그러실 필요가 없는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의롭게 살기 보다는 죄 가운데 사는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셔도 될 것 같은데,

성령님께서는 늘 우리 삶을 인도하시고,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예수님과 성령님을 사랑의 예수님, 사랑의 성령님이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친절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모습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겠죠.

나에게 자비함, 곧 친절과 호의가 있는가...

나는 해야 할 것만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구지 할 필요가 없는데, 더 하는 친절한 사람인가.

의무와 책임, 그 이상도 이하도 하지 않고 딱 거기까지만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늘 의무와 책임, 그 이상의 것들까지 감당하는 사람인가?

 

살면서 우리가 감동을 받을 때는 누군가가 내게 의무와 책임을 감당했을 때가 아니라,

그 이상을 감당해 줄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라고 고백할 때가 언제냐 하면,

하나님께서 당연히 내게 해 주셔야 하는 것을 해 주실 때보다는

내게 받을만한 자격도 없고, 하나님 앞에 좋은 모습도 보이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내 삶을 인도해 가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언제나 자비하신 분입니다. 친절한 분입니다.

친절한 마음으로 늘 우리에게 친절한 말씀으로 위로와 회복을 말씀하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속상하고, 마음 상하고, 낙심이 되다가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묵상하다가, 성경 속에서 그런 하나님의 마음과 말씀을 대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회복과 치유를 경험하면서 다시금 힘을 내어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자비하심, 곧 친절을 경험한 사람은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친절을 곁에 있는 사람에게 베풀 줄 알게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베푼 나의 친절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친절,

곧 하나님의 자비하심까지 알게 되는 데까지 나아가게 합니다.

그걸 우리는 전도라고 말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자리에서, 혹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친절하지 않습니다.

무례한 기독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예의와 상식을 벗어난 말과 행동들을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 수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비하심, 친절하심을 한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은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친절하게 다가오시고, 함께 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친절하심에 매일 감동하고, 감격하여 사는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새벽마다 기도하고, 아침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런 친절하신 하나님, 도에 넘치는 과분한 사랑을 내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심을

다시 한번 깨닫고, 하나님의 친절하심을 따라

무엇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나도 하루를 친절함으로 보내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친절하심을 자주 잊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그 하나님의 친절하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비하심, 친절하심에 바르게 반응하여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친절하심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삶을 살아가십시다.

또한 우리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친절을 나누며 살아가십시다.

상대방을 향한 우리 마음과 말과 행동에 마음을 담은 친절을 행하십시다.

 

내가 생각하는 여기까지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십시다.

그런 우리의 한 걸음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마음의 감동을 줄 것이며,

그 마음의 감동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까지 연결되어

그 사람도 하나님의 자비하심 속에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남은 삶... 자비, 곧 친절이 삶의 모습이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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