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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ihu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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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3 20: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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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을 아는 지식 (21. 6. 23 수요기도회)
◉ 설교일 : 2021616() 수요기도회

◉ 
본 문 : 고린도후서 6:6, 호세아 6:6 (신약 291)

◉ 
제 목 : 하나님을 아는 지식

 

난주에 우리는 사도였던 바울이 일반적인 고난인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

다른 사람에 의하여 겪게 된 고난인 매 맞음, 갇힘, 난동,

그리고 스스로 자처한 수고로움, 자지 못함, 먹지 못함...

그 모든 고난들을 이겨내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그 첫 번째를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은 누가 봐도 견디기 어려운 심각한 고난을 겪고 있지만,

바울 안에 그걸 이겨낼 만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고난을 고난으로 여기지 않으며, 주어진 고난을 잘 감당했다고 했습니다.

사도로서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의 근거와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의 이유들인데,

 

그 첫째 이유가 깨끗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려는 행동과 의도가 순수하고 깨끗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했던 그 마음과 의도가 순수하고, 깨끗했기 때문에,

바울은 어떤 고난이든지 넉넉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일에 사실 의도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좋은 뜻과 의도, 생각을 끝까지 가지고 간다는 것은 참 귀한 일입니다.

끗함, 순수함은 영적인 면, 신앙적인 모습,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우리의 모습 중 대표적인 것이 있다고 하면, 그건 깨끗함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의도의 순수함입니다.

 

예배를 드리든, 기도를 하든, 말씀에 순종을 하든,

내게 있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 예배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기도하고,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순종할 때,

하나님은 그 예배와 기도와 순종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때, 언제나 %를 마음에 두고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믿음이 무언가 믿음의 행위를 했나 안 했나, 거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믿음의 행위에 %를 적용해 보아야 할 때라고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고 안 하고의 문제를 넘어, 어떻게 하고 있는 지에까지 우리의 마음을 두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족이나 믿음 없음을 탓하지 말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100%의 깨끗함을 드리고,

믿음이 없으면 없는 대로 100%의 순수한 마음과 의도로 행하자고 했습니다.

 

오늘은 사도였던 바울이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였던

지식에 대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2. ‘지식입니다.

오늘 말씀 6절에 나오는 지식이란 일반적인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그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보다 더 훌륭한 삶의 지침은 없습니다.

바울은 늘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목말라했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풍성했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닥친 모든 고난을 넉넉히 이겨내었습니다.

또한 이 지식을 전하려고 온갖 고난과 핍박을 이기고 견뎠던 것입니다.

 

지식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적 의미는 교육이나 경험, 또는 연구를 통해 얻은 체계화된 인식의 총체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이 전부가 아닌,

배우거나, 경험하거나, 연구해서 얻게 된 모든 것이 지식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지식이라는 것이 왜 중요하냐 하면,

결국 사람은 자신의 지식 울타리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으로 서양의학이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전인 1900년대 전후해서

서양의 의료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그 중에 알렌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렌(Horace N. Allen)은 한국에 오기 전

중국의 상해와 남경 등지에서 미국 북장로교 소속의 의료선교사로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에 입국한 알렌은 미국 공사관의 공의(公醫)로 임명되었고,

미국 공사와 외국인들의 신임을 쌓아가는 동시에 한국 정부의 묵힌 아래

개척 선교사로서의 터전을 닦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884124일에 일어난 이른바 삼일천하로 알려진 갑신정변이 일어납니다.

갑신정변은 개화세력들이 일본의 힘을 빌려 수구세력(守舊勢力)을 제거하고

한국의 개화를 촉진하려는 의도에서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이날 밤 다수의 수구세력들이 살해되었으며,

명성황후의 조카뻘 되는 사람으로 수구세력의 거두였던 민영익(閔泳翊)도 자객들에 의해 난자를 당합니다.

그의 동맥은 끊어졌으며 머리와 몸은 일곱 군데나 칼에 맞아 목숨이 위독한 지경이었습니다.

마침 한국정부의 외교고문이었던 뮐렌도르프(P. G. von Möllendorff)가 황급히 알렌 의사를 불렀습니.

 

알렌이 관저에 도착하니 어의(御醫)14명이 거기에 모여 있었지만,

큰 외상을 입은 환자를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습니다.

렌은 어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양의술로 민영익의 치료를 시작하여 그의 목숨을 구하는데 성공 합니.

알렌은 걱정과 불안 속에서 석 달 동안이나 조심하여 치료하여, 결국 민영익의 목숨을 구합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광혜원 병원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광혜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04년에는 미국의 기업가 세브란스의 후원으로 장소를 남대문 밖으로 옮겨

지금의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이 됩니다.

 

알렌이 행했던 사람의 몸에 칼을 대어 찢고, 바늘로 꾀매는 외과술은

그 당시 조선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의학지식이었습니다.

어의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침, , 한약을 통한 지식을 총동원했지만,

몸 여기저기 칼에 맞아 중상을 입은 사람을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그 사람을 치료할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치료할 지식을 알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

오히려 사람의 몸에 칼을 대는 것은 부모가 물려주신 몸에 흠집을 내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미 일상화된 의학 지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알고, 모르는 것으로 구분되는 지식의 차이는 단순히 알고 모르는 것의 차이가 아니라.

말의 차이와 생각의 차이와 관점의 차이와 생각의 차이와 판단의 차이, 행동의 차이로 나타나며,

결국은 그것이 삶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옛날 부모님들이 왜 논 팔고, 소 팔아서 자식공부를 시켰겠습니까?

오늘날 부모님들이 왜 자녀교육에 온 힘을 다할까요?

배우며, 지식이 많아지면,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배운 자녀들이 그렇게 자신들을 가르친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는 불효가 문제이지,

사실 그들이 배운 지식이 문제는 아닙니다.

 

지식이 없다는 건, 무언가를 모른다는 건,

그만큼 우리의 생각과 관점과 기준과 말과 행동을 편협되고, 좁게 만듭니다.

그래서 세상이나 삶의 경험이 많고 풍부한 사람, 두루 넓게 공부한 사람들을 만나면

융통성있고, 이해심도 있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답답하지 않고, 편안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사는 우리에게도 지식이라는 것이 필요할까? 대답은 “YES”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세상의 경험이나 지식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교회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믿음생활도 세상 가운데 사는 인간의 삶이기에

세상의 경험이나 지식이 도움도 되고, 많은 좋은 점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살 때에는 세상의 지식보다 믿음의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지식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믿음이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서로를 아는 일이겠죠.

서로가 서로를 모른다면, 그 관계는 피상적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내가 누군가를 믿는데, 그 사람을 잘 모른다고 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할 겁니까?

어떻게 그렇게 잘 모르는 사람을 믿을 수 있어...

리가 당하는 사기의 99%는 그 사람이나 내용은 모르는데, 그 사람의 말만 철썩 같이 믿을 때 일어납니.

그래서 관계는 서로를 아는 만큼 깊어지고, 서로를 아는 지식과 서로를 믿는 믿음은 비례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믿음 생활 할 수 있느냐?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 생활을 오랫동안, , 깊이 있고, 성숙하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고,

아는 만큼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으며, 아는 만큼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믿음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으신가요?

다른 사람에게 물을 필요 없이 내가 하나님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알 수 있나요?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알려주시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듣고, 묵상할 때,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영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안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할 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게 됩니다.

경험적으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꼭 신비하고, 신령한 경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던 시몬 베드로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했을 때,

그가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이 달라졌습니다. 선생님에서 주여로 바뀝니다.

호칭이 달라졌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그냥 보통의 선생님 중의 한 사람으로 여겼지만,

순종에 따른 결과를 보고, 자신의 주인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지니려면, 반드시 성경과 순종이 겸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믿음생활 잘 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 마십시오.

그런 믿음 생활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자칫 우물 안 개구리처럼

편협하고, 고집스러운, 더더군다나 하나님의 말씀과 동떨어진 믿음생활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목회자의 설교 한 편 듣는 것만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그건 우리 자녀가 예습이나 복습과 같이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 하나도 없이,

오직 학교에 가서 선생님의 수업만 듣고 공부 1등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된 여러분, 여러분 자녀가 선생님의 수업만 듣고, 집에 와서는 책 한 자 보지 않는다면,

그래... 선생님 수업만으로 충분해...라고 이해할 분이 얼마나 되십니까?

사실 선생님의 수업은 배울 내용의 전부가 아니라, 방향만 제시할 뿐입니다.

선생님이 1시간 수업을 했다면, 집에 와서 몇 시간 스스로 예습과 복습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 때 비로소 1시간 배운 내용이 나의 지식이 됩니다.

 

하나님 알아가는 것을 학생들 공부하는 것보다 못한 것으로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공부하는 체질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아는 것에는 성경공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 가는데, 꼭 학교에 가서 공부해야만 하나요? 결국은 관심입니다.

지식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공부에 관심이 있으면,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더 공부를 잘 합니다.

누군가를 잘 안다면, 그만큼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는 지식이라고 하니까 성경공부만 생각하는데,

물론 성경공부는 하나님을 아는 지름길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는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이 있어 보세요. 성경 읽지 말라고 해도 읽을 겁니다.

기도하지 말라고 해도 기도할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에게 관심을 가져 보세요.

우리가 그렇게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분인데,

그 분이 어떤 분인지는 알고 믿고, 의지하고,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의지, 순종이 더 좋아지고, 깊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냥 되는대로, 시간가는대로 믿음생활하지 말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고민과 생각, 묵상을 해 보세요.

그러면 하나님에 대한 궁금함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궁금함들이 생겨나면, 그 때 성경을 펼치세요.

그리고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달아 아세요.

깨달아 아는 지식이 생기셨습니까?

그러면 그 지식이 진짜인지, 하나님께서 정말로 성경이 말씀하는 그런 분인지 실험해 보세요.

그 실험을 우리는 순종이라 부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아는 지식을 삶 속에 순종이라는 방법으로 실험하다 보면,

하나님에 대한 호칭과 고백이 달라집니다.

의미 없이 부르던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고백을 하면 우리의 믿음은 그만큼 깊어지고, 성숙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왜죠?

하나님은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남은 한 주간도 성경 말씀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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